일기와 아무 말/다섯 밤과 낮 (51) 썸네일형 리스트형 2021. 04. 26 (월) : 별이 왜 나를 따라오는지 산골짜기로 찾아간 캠핑장은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덕에 붐비지도 않았다. 여행의 팔 할은 날씨인데, 아주 고맙게도 청명하고 따뜻했다. 우리는 잔디 위에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눕듯이 앉아 얇은 담요를 덮고 가만히 한참을 놀았다. 별 별 이야기를 하고, 간식을 먹고, 눈을 감았다가, 뛰노는 애들을 구경했다가. 시간을 물 쓰듯 써도 펑펑 남아 넘칠 것 같은 축복스런 주말이었다. 어릴 적 나는 방학마다 경북 시골에 있는 외할머니 집에 살았다. 여름에는 소가 물 먹는 냇가에서 송사리 잡고 겨울에는 빙판에서 포대 자루 타면서 놀았다. 가마솥에 옥수수 찌고, 닭장에서 꺼낸 계란으로 후라이 해 먹었다. 어느 여름 밤에 엄마랑 외할머니랑 나랑 흙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누웠다. 밤 하늘에 별이 쏟아질 것 처럼 많았다. 지.. 20201. 04. 23 (금) : 그냥 하는 거지 내가 명상을 처음 시도해 본 것은 작년 이맘 때다. 당시에는 힘들어 죽겠다 이러다 죽겠다 정도의 감이었다만, 지금 생각해보면 사회 생활을 시작하고서 가장 극한의 상태가 아니었나 싶다. 주말도 휴일도 없이 매일 새벽까지 일을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들 속에서 사람들은 폭탄 돌리기 하듯 분노를 떠넘겼다. 나는 쉽게 화내고 소리치고 욕했다. 체력적, 정신적으로 내가 사랑하는 내가 가진 것들을 잃어가고 있었다. 하루는 자기 전 누워서 유튜브로 호흡 명상을 해보려 했다. 10분 동안 1초도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제서야, 내가 눈이 떠지기 전부터 곯아떨어지기 직전까지 일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새벽녘 퇴근을 해 겨우 씻고 지쳐 누워도, 사실은 1초도 못 쉬고 있다는 것을 .. 2021. 04. 22 (목) 아침 명상을 시작한지 꼬박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잡념이 가득한 날도, 깜빡 조는 날도 있었지만 명상이 내 삶에 가까이 들어왔다는 것이 더 중요하겠다. 나름의 루틴도 생겨서, 아침에 눈을 뜨면 바디 샤워를 하고, 밤에는 바디 스캔 가이드를 들으면서 잠이 든다. 잠이 드는 순간까지 핸드폰을 들여다 보는 게 아니라, 내가 자기로 마음 먹어 잠든다는 것이 제법 새롭다. 내일은 고대했던 캠핑을 떠나는 날. 교외로 나가서 산도 보고 물도 보고, 어여쁜 봄날을 즐길 생각에 마음이 들뜬다.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이 아주 많은 것 처럼 펑펑 쓰는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맛있는 것 나눠먹고 포근해진 밤을 거닐어야지. 내일 기쁠 것을 오늘 미리 기뻐해도, 기쁨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2021. 04. 21 (수) 이번 주 초에는 왠지 힘이 덜 났다. 지난 주에 유독 외출을 많이 했는데, 에너지를 다 써버린 건지! 코로나 이후로 체력이 많이 떨어진 것을 실감한다. 근수저까지는 아니지만 별다른 노력 없이도 근육량이 크게 부족한 편이 아니었는데, 얼마 전 인바디 체크를 해보고 깜짝 놀랐다. '별다른 노력 없이도'는 젊음의 몫이었나 보다. 조금 서글퍼지지만, 나이가 들면서 얻는 것이 있으니 잃는 것도 있구나 한다. 오늘도 밥 잘 챙겨먹고 운동 가야지. 지난 주 금요일에는 처음으로 트레바리 독서 모임을 다녀왔는데, 사실은 직전까지 고민에 겨웠다. 너무 피곤한데 그냥 쉴까, 한 마디도 못하면 어떡하나, 지금 환불하면 얼마나 돌려주는지를 따져봤다. 아니다, 그냥 하자. 아 그냥 하자. 그냥 하기로 한 어려운 일들이 그렇듯, .. 2021. 04. 16 (금) 이번 주는 유독 일이 정말 잘 되었다. 열심히 쓴 기획서를 가지고 여기 저기서 개발 검토를 받고 조율하는 시기인데, 사실 나에게는 항상 이 시기가 덜 재미있었다. 끊임없이 묻고, 수정하고, 다시 묻느라 기운을 다 쓴다. 그러다보면 대개는, 처음에 하고자 했던 것들이 조금씩 깎여 일부만 남게된다. 그런데도 그리 힘 빠지지 않는 한 주였다. 나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곁에 있기 때문인가 했다. 왠지 덜 막막하고, 막막한 것도 대수롭지 않다. 어제는 남자친구가 정말로 사랑스럽고 애틋한 시 한 구절을 보내주었다. 아름다운 시와 아침에 시를 보내주는 마음을 영원히 기억하려고 다시 많이 읽었다. 나의 시를 들려줄 사람이 있는 것을 아는 이 세상 얼마나 살만 한 지. -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2021. 04 .15 (목) 지난주 쯤 머리를 짧게 잘랐다. 원래 늘 짧은 머리였다가, 어깨 너머로 닿을 만큼 길게 기른 것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꼭 기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보니, 결정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숏컷의 최대 장점이라하면 씻고 준비하는 시간이 훨씬 단축된다는 것. 나는 가뜩이나 머리숱이 많아서 말리는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 지금은 드라이기로 훌훌 1분이면 된다!머리를 자르고 나서 왠지 유산소 운동을 시작했다. 더운 걸 무척 싫어해서 유산소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데... 필라테스를 꾸준히 다니고 있다보니 운동량을 좀 늘리고 싶어서다. 어제 저녁에도 땀 범벅이 된 채로 집에와서, 샤워를 하고 1분만에 머리를 말렸다. 유산소 운동을 하기로 마음먹는 데에, 머리를 잘랐다는 사실이 1 쯤은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 긴 머리.. 2021. 04. 14 (수) 어제는 오랜만에 회사로 출근을 하는 날이라, 아침에 짬을 내어 지하철 역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같은 회사에 다니다가, 같은 지역으로 이직한 친구들이다. 우리는 얼마나 운이 좋은지! 같이 있으니 그 곳 같고, 그 때 같았다. 좋아하는 카페에 들러 커피를 한 잔 씩 손에 들려주고, 각자의 일터로 가기 전 다같이 셀피를 한장 찍었다. 살을 맞대고 있지 않더라도, 어딘가에 누군가가 있음을 아는 것 만으로 곁에 있는 것만 같다. 이직 후 계속 재택근무를 하느라, 그리고 꽤나 길치인 탓에 아직도 판교는 내게 조금 낯선데, 어제 친구들과 거닐 때는 그렇지 않았다. 아는 길 같고, 무사한 길 같았다. 방향을 몰라도 내딛는 발의 무게가 조금 가벼웠다. 자기 전 남자친구에게 아침에 찍은 사진을 보여줬더니, '내가 너무 행.. 2021. 04. 12 (월) 오늘은 왠지 몸이 가볍고 힘이 난다! 평소보다 30분 더 일찍 일어나서 명상을 했다.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흐리지만 마음은 편안하다. 주말을 아주 잘 보냈고, 오늘 기대하던 일이 하나 있다. 좀처럼 찾기 어려운, 기쁜 월요일을 맞이하는 아침이다. 어제는 남자친구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 셋이서 저녁을 먹고 간단히 술을 마셨다. 두 사람의 성격이 닮은 데가 있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그다지 놀랍지 않은 일 같다. 그래서 둘은 잘 이야기가 통하고, 가끔 셋이 갖는 만남은 무척 즐겁다.바람 한 줄기에도 웃음이 났다. 나의 시간을 기꺼이 전부 다 나눠쓰고 싶은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환상적인지.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두 사람으로부터, 이해와 응원과 사랑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하루였.. 이전 1 2 3 4 5 ···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