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와 아무 말/다섯 밤과 낮 (51) 썸네일형 리스트형 2021. 04. 09 (금) 낮은 컨디션을 아주 낑낑대고 열심히 끌어간 한 주였다. 밥도 운동도 잠도 명상과 휴식도 모자란 것이 딱히 없는데, 이번 주에 이렇게 힘내기가 어려웠던 것은 아마도 호르몬 때문이었겠지? 몸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니어야할텐데. 드디어 금요일이니까 잘 쉬고, 다음 주의 몸을 좀 더 지켜봐야겠다. 어제는 친한 친구에게 아주 기쁜 소식이 있었다. 나도 같이 괜히 들뜨고 희망찬 마음에, 고민하고 있었던 운동 수업을 신청해버림. 필라테스를 꾸준히 한지는 3개월이 조금 넘었는데, 실력도 늘고 재밌으니 유산소 운동을 병행하고 싶어서다. 헬스장에서 하는 GX 처럼, 프로그램을 매일 바꿔가며 하는 그룹 PT 같은 수업이다. 필라테스를 하며 느꼈지만 나는 역시 혼자보다는 여럿이 하는 것이 재밌더라. 그리고 따라할 사람이 .. 2021. 04. 08 (목) 어젯 밤에 아주 재밌는 일이 있었다. 대학생 때 해외 봉사 활동에서 만난 친구들과 톡을 하다가, 그 때 같이 만들었던 책을 꺼내보았다. 준비 기간이 약 한 달, 봉사 기간은 2주가 조금 넘었던 것 같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작은 사회는 아주 끈끈한 소속감을 이루었고, 나의 20대를 만든 수많은 결정과 관계에 상당한 영향이 되었다. 10년 가까이 지난 일들이, 새벽같이 나와 자르고 붙이고 준비했던, 텁텁하고 뜨거운 노란 빛의 모래 운동장이 아직도 어렵지 않게 그려진다. 봉사가 끝나고, 우리는 귀한 기억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그 중 하나가 책을 만드는 것, 50명이 저마다 한 두 편 씩 주제를 나눠 무언가를 썼다. 당연히 모두가 처음 해보는 일이었고, 몇 안 되는 디자인과 학생이었던 내가 150장에 달.. 2021. 04. 07 (수) 어제는 오후께 도통 힘이 나지 않고 마음이 울적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는 채 축 처지는 기분이 몇 시간 정도 계속되었다. 어떡하지? 퇴근 시간이 오기만을 바라고 있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나 생리 중이구나. 그리고 또 동시에 생각했다. 뭐야, 너무 간단하잖아? 우울하고 눕고 싶고 다른 사람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던 것, 어느 정도는 다 호르몬의 작용이었다는 것. 내가 이과를 나왔다면 좀 더 멋드러진 말로 설명할 수 있었을테지만... 너도 나도 어쨌거나 유기적인 질서와 법칙을 따르는 생물이라는 것이다. 요리를 해서 맛있게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늘 양파 버섯을 꺼내두고 업무를 마무리하는 동안, 오전에 회의했던 담당자 분이 연락을 주셨다. 서로 문의를 교환하는데, 친절한 설.. 2021. 04. 06 (화) 주말에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우리는 4년 전 같은 회사에 입사하며 만나서, 내내 서로에게 엄청난 위로와 기쁨을 주었다. 지금은 모두 다른 모양의 삶을 살고 있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시시콜콜 나누니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저마다 온 힘을 다해 살고 있다가 마주하는 시간이 너무 귀하다. 우리가 아주 잘 알고 있는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고 꺼내고 꺼내어 한참을 웃었다. 백 번 쯤 웃은 일도 우습다는 것이 우습다. 그 때 너 그랬잖아, 그 때 그 분은 잘 지내? 그 때 참 그랬는데. 4년 전 우리가 살았던 곳. 갈림길인 줄도 모르고, 매 순간 가장 나은 결정을 내린다. 바닥을 보며 바삐 걸어오다 문득 뒤를 돌아보면 그 자리로부터는 꽤나 멀리 온 것이다. 이제 나는 옳은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시.. 2021. 04. 02 (금) '베드 타임'이라는 이름의 차를 샀다. 요즘 카페인에 부쩍 취약해져 커피는 물론 차도 멀리하고 있는데, 디카페인이라 자기 전에도 마음 편히 마실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젯 밤 차를 끓이고 마시며 책을 읽었다. 어린이 독서 교실 선생님이 쓴 어린이에 대한 책이다. 읽는 내내 가슴이 따뜻한 물이 보글보글 솟는 것처럼 두근거렸다. 그리고 나의 어릴 적 글쓰기 선생님이 생각났다. 초등학교 다니던 내내 일주일에 두 번 씩, 방과 후 교실에서 독서와 글쓰기를 가르쳐 주었던 선생님. 담임 선생님처럼 기억하기 좋은 주제가 아니어서였을까, 이렇게 오래도록 한 번도 선생님을 떠올리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했다. 나는 책 읽기도 글쓰기도 아주 좋아하는 어린이였다. 또래보다는 잘 썼던 모양이고, 그래서 선생님이 높은 학년 수업을.. 2021. 04. 01 (목) 시간은 믿을 수 없이 빠르게 지나가고, 벌써 네 번째 달이다. 만우절이라니, 서로 놀리고 골탕먹여도 귀엽게 봐주는 날이라니! 이런 깜찍한 날은 누가 만든걸까? 어제는 거짓말처럼 기분 좋은 일이 있었다. 쉬는 날이었던 남자친구가 예쁜 꽃을 들고 집에 왔다.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었는데, 눈만 빼꼼 내밀고 인사를 하더니 문 틈 사이로 쏙 꽃다발을 내밀었다. 나는 그 순간을 영원히 눈 속에 남기려고 지금도 다시금 그려본다. 꽃을 보러 갈 수 없어서 꽃을 가져왔다고, 아름다운 봄 날에 아름다운 꽃을 보며 나를 떠올리는 마음이 너무 귀하고 감사해서, 눈물이 찔끔 날 만큼 행복했다. 아침 햇빛을 받아 활짝 피운 꽃이 유리병에 담겼다. 저마다 어여쁜 빛깔과 향기, 그 옆에 앉아 명상을 했다. 감정에 초연하기란 얼마나.. 2021. 03. 31 (수) 우리 집 맞은 편에 아주 큰 공사를 하고 있다. 나는 잘 때 소리에 크게 예민하지 않은 편이라 다행이지만, 눈을 뜨면 부산한 공사 소음이 잔잔하게, 그러나 끊임 없이 들려온다. 듣기로는 재개발 부지라는 것 같다. 땅도 아주 넓고, 공사도 아주 크다. 공사를 시작한지는 6개월이 넘었나보다. 건물들이 빼곡히 자리한 상가 골목이었다. 폭약을 몇 번 터뜨리니 금세 돌 무덤이 되었다. 조금은 무시무시한 울림이 내가 앉은 자리 까지 전해왔다. 그러더니 며칠 새 콘크리트 조각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기약 없는 흙바닥이 되었다. 붉은 땅에 보이지 않는 선이 그려져 있기라도 한 것 처럼, 족히 수 십 대는 되는 포크레인들이 구덩이를 파고, 무언가를 묻고, 시멘트를 붓고, 또 다른 구멍을 뚫는다. 비가 와도, 눈이 .. 2021. 03. 30 (화) 오늘은 화요일, 좋아하는 연사들이 정기적으로 클럽하우스 방을 여는 날이다. 야근으로 정신이 없어 벌써 2주 째 방을 놓쳤는데, 오늘은 꼭 챙겨들어야지 하며 적어둔다. 어제는 유독 일이 잘 안되고 좀이 쑤셨다. 경험적으로 그런 날의 다음 날은 일이 제법 잘 된다. 오늘도 그랬으면 하는 마음이다. 가장 최근에 두려움을 극복하고 시작한 일이 네 가지나 있다! 필라테스, 블로그, 리추얼, 독서 모임. 새해의 시작과 함께, 그리고 이직 후 생겨난 여러 갈증과 함께, '해보지 않았던 것'을 해봐야겠다는 마음에서다. 독서 모임은 시국 탓에 미루어져 아직 첫 모임을 시작하지 못했지만, 나머지 세 개는 부단하게 해오고 있다. 이전에도 인생에서 한 번 쯤 해봤으면 했던 것들이었다. 하는 사람을 동경하면서도 정작 내가 할 .. 이전 1 2 3 4 5 6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