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와 아무 말/다섯 밤과 낮 (51) 썸네일형 리스트형 2022. 03. 16 (수) : 서른 두 살에 입시 미술 유튜브를 보는 사람 나의 스트레스 위험 지표같은 꿈이 있다. 그건 바로, 중요한 시험을 코앞에 두고 공부를 하나도 안한 꿈! 벌써 수 십 번을 속았는데도 나는 번번히 망연한 고딩이 되어 울상으로 눈을 뜬다. 나는 평생을 벼락치기 인간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아도 괜찮은 순간이 어디까지인지, 그 마지노선의 감이 정확히 체득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놓쳐버렸다는 아찔함은 상당한 공포인 것 같다. 나는 꽤 자주 입시 미술 유튜브를 본다. 주로 대형 미술학원에서 올리는 영상인데, 합격작, 연구작을 재현하거나, 작법을 시연하면서 기술적인 팁을 알려준다. 라떼는 말이야... 다른 학원 그림 보려면 미대입시 잡지를 구독해 보거나 학원 쌤이 교수 평가나 대회에서 몰래 찍어오는 거 보는게 다였는데. 유명 학원들 간에는 스타일 경쟁과 눈.. 2022. 03. 02 (수) : 용기를 내면 좋은 일이 생긴다 지난 한 달은 누구도 내게 묻지 않았고, 나조차 궁금하지 않았던 질문에 답해보는 시간이었다. 내가 알고자하기 전에는 누구도 내게 알려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알게된 후에는 왜 이렇게 중요한 걸 아무도 안 알려줬어!하고 허공에 원망하게 되는 것! 내가 어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어떤 사람이 되기로 결정해서가 아니라 하고자 하는 것을 조금씩 하다보면 어느 땐가 그 곳에 데려다 놓아지는 것이라고 마침내 스스로에게 알려주었다. 나는 무엇이든 만들고 무엇이든 말하기를 좋아하지만, 오래도록 남고 모두가 볼 수 있는 것을 하기가 어려웠다. 가진 것보다 많아 보이는 체 하는 것 같은 내가, 남는 것에 너무 애를 쓰게되는 내가 싫어서였다. 작년부터 한 뼘 씩 마음의 벽을 넘어서 요즘은 일터에서는 못.. 2022. 01. 26 (수) : 이웃을 기억한다는 것 새해가 되고 나는 이사를 왔다. 엄청난 변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어제 일기를 쓰고 오늘 쓴다는 양 써보기. 매주 수요일은 아파트 분리수거 날. 매일이고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오피스텔에 살다가 날짜에 맞춰 버려야하는 것이 조금 귀찮다. 일주일동안 모은 쓰레기를 들고 엘레베이터를 탄다. 보통 나처럼 양손이 가득 찬 이웃들을 마주치게 된다. 10층의 여자 이웃이 손이 모자라 상자를 고쳐 쥐는 나를 보더니 먼저 내리라고 엘레베이터를 잡아 주었다. 그러고도 정비가 늦는 나한테 "주세요."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주세요, 버려드릴게!" 왼손에 들린 쓰레기봉투를 빼앗아 들고 성큼 성큼 걸어가 나 대신 쓰레기통으로 휙 던져주었다. 우리는 올라갈 때 다시 마주쳤고, 소리내어 인사를 했다. 오피스텔의 예의.. 2021. 10. 21 (목) : 쿤타와 내 낡은 서랍 속의 아이팟 쇼미더머니를 조금 봤다. 저번 시즌을 아주 재밌게 봤기 때문에 관성적으로 봤다. 경쟁하는 프로그램이 다 거기서 거기 뻔하다지만, 막상 보기 시작하면 당연히 재밌다. 그러던 중 아주 흥미로운 참가자를 발견했다! 이 사람이 이번 시즌 3위 안에 든다에 오백원을 걸겠다. 쿤타! 가사가 독보적이고 분위기가 죽여준다. 듣자마자 내가 고딩 때 좋아하던 힙합의 기운을 느꼈다. 마침 음악을 오래 했다는 서사로 캐릭터를 풀길래, 무슨 노래를 했었는지 막 찾아봤다. 동전한닢 Remix에 나왔던 사람이었다. 나는 이 곡을 닳고 닳도록 들었다. 미술학원 갈 때, 올 때, 그림 그리면서, 독서실에서, 아이팟 나노 3세대로 들었다. 그 시절 나는 가리온, 피타입, 데드피, 버벌진트, 더블케이, 사이먼도미닉, 더콰이엇, 랍티미스트.. 2021. 10. 20 (수) : 사랑의 적정 수준 우리가 만난지 얼마 안 되었던 지난 해 겨울, 우리집 볕이 좋다고 남자친구가 귀여운 연필 선인장 화분을 선물해주었다. (*이번에 알게 된 사실 : 연필 선인장을 청산호, 청기린이라고도 부름. 당연함. 그렇게 생김.) 2년이 다 되도록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무던하고 조용하게 잘 살아주었다. 그 덕에 자신감이 붙어, 그리고 또 늦여름과 가을 해가 너무나 따사로워, 요즈음 다른 화분들을 몇 개 들였다. 이름을 붙인 새로운 것들이 쑥쑥 자라고, 그것이 아름답고 재미나 매일 들여다보았다. 반면 연필이는 1년 가까이 성장 없이 그대로라, 뭔가 부족해 더 못 크는 중인가 싶었다. 그래서 분갈이도 해주고, 영양제도 먹이고, 또 매일같이 들여다보았다. 웬걸. 어젯 밤 화분을 둘러보는데 동그랗게 뻗은 가지 몇개가 .. 2021. 10. 14 (목) : 부작용이 전혀 없는 아자아자화이자 요 며칠 다시 일기를 쓰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아침에 백신을 맞았다. 그리하여 휴가를 써두었는데, 일이 어찌하고 저찌하여 바쁜 탓에 전혀 쉬지 못했다. 그 핑계로 아주 아주 오랜만에 저녁으로 일반식을 시켰는데, 배달 실수로 식사가 엄청 늦어지게 되었다. 내 소중한 일반식인데! 가게 사장님과 수 번의 전화를 오간 끝에, 다행히 다시 보내주신 음식을 받았다. 와중에 음식을 잘 못 받은 집에서, 영수증에 적힌 내 번호로 전화를 해 난데없이 날카롭게 굴어서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그 기분을 고작 실수한 사람에게 되돌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면... 회사에서 이미 안달복달을 할 만큼 해서 오늘은 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배달 기사님과 가게 사장님의 사과의 말에 정말 괜찮습니다. .. 2021. 04. 29 (목) : 수취인명확 중요한 보고 준비를 하느라 고생했다고 비타민을 선물 받은 것이 한 달 남짓 되었다. 먹는 방법이 흡사 현대인의 물약 포션과 같고,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아주 유명하다고 해서, 궁금한 마음에 덥석 받았다. 마침 너무 바빠 손꼽아 기다리지는 못하고 몇 주가 지났을까, 문득 떠올려 보니 택배를 받은 일이 없는 것이다. 배송 조회를 해 보니 기흥 어딘가에 멈춰있었다. 택배사 고객 센터는 도무지 전화를 받지 않고, 바쁘게 벌어지는 일들에 잊고 지내다 며칠 전에야 온라인 몰 고객 센터로 연락을 했다. 그리고 어젯 밤,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우리 집에 도착했다. 살면서 택배를 받아 본 일이 수 백 번은 될텐데,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급하게 산 것이 아니니 화가 나지도 않았고, 이런 일이 있구나 하고 조금 황당하고 조.. 20201. 04. 28 (수) : 세 줄 요약 오늘은 일을 많이 한 날, 퇴근 후 운동을 다녀온 날,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다시 일을 한 날. 아침에 일기를 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 일기장을 켰다. 쓸 것이 없어도 쓰고 싶으니까, 매일 쓰는 것만으로 충분하니까 무엇이든 쓴다. 많이 생각하고 많이 말하고 많은 글을 쓴 날, 그럼에도 나를 위한 글은 쓰지 못한 날,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다시 일을 하고 나를 위해 세 줄의 글을 쓴 날. 이전 1 2 3 4 ··· 7 다음 목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