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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와 아무 말/다섯 밤과 낮

2021. 04. 26 (월) : 별이 왜 나를 따라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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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짜기로 찾아간 캠핑장은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덕에 붐비지도 않았다. 여행의 팔 할은 날씨인데, 아주 고맙게도 청명하고 따뜻했다. 우리는 잔디 위에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눕듯이 앉아 얇은 담요를 덮고 가만히 한참을 놀았다. 별 별 이야기를 하고, 간식을 먹고, 눈을 감았다가, 뛰노는 애들을 구경했다가. 시간을 물 쓰듯 써도 펑펑 남아 넘칠 것 같은 축복스런 주말이었다. 

 

어릴 적 나는 방학마다 경북 시골에 있는 외할머니 집에 살았다. 여름에는 소가 물 먹는 냇가에서 송사리 잡고 겨울에는 빙판에서 포대 자루 타면서 놀았다. 가마솥에 옥수수 찌고, 닭장에서 꺼낸 계란으로 후라이 해 먹었다. 어느 여름 밤에 엄마랑 외할머니랑 나랑 흙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누웠다. 밤 하늘에 별이 쏟아질 것 처럼 많았다. 지금도 그게 꿈인지 아닌지 헷갈릴만큼... 별이 왜 나를 따라오냐고 물으면 공주가 예뻐서 그렇지 라고 하는 그 순간들이 모여서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내가 너무 소중하고 뭉클해. 

 

어제는 갖고 싶다고 지나가듯 말했던 의자를 남자친구가 몰래 사서 선물해주었다. 어느 디자인 프로젝트의 일환이라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나의 역사에 이런 것들이 쌓인다. 나는 이런 사랑들로 만들어진다. 내가 제 때 밥을 챙겨먹고 아프지 않고 한 번 더 웃기를 바라는 사랑.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의자를 갖기를 바라는 사랑이 자갈 한 알씩 쌓아올린 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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