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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와 아무 말/다섯 밤과 낮

20201. 04. 23 (금) : 그냥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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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명상을 처음 시도해 본 것은 작년 이맘 때다. 당시에는 힘들어 죽겠다 이러다 죽겠다 정도의 감이었다만, 지금 생각해보면 사회 생활을 시작하고서 가장 극한의 상태가 아니었나 싶다. 주말도 휴일도 없이 매일 새벽까지 일을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들 속에서 사람들은 폭탄 돌리기 하듯 분노를 떠넘겼다. 나는 쉽게 화내고 소리치고 욕했다. 체력적, 정신적으로 내가 사랑하는 내가 가진 것들을 잃어가고 있었다.

하루는 자기 전 누워서 유튜브로 호흡 명상을 해보려 했다. 10분 동안 1초도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제서야, 내가 눈이 떠지기 전부터 곯아떨어지기 직전까지 일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새벽녘 퇴근을 해 겨우 씻고 지쳐 누워도, 사실은 1초도 못 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무렵 나는 자동 재생되는 지긋 지긋한 생각들을 떨쳐내기 위해, 가만히 있다가도 종종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가엾어라, 그 때의 나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다행히도 모든 것은 지나간다고,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이직을 하면서 상황이 나아짐에 따라 몸도 마음도 회복이 되었다. 나는 내가 버틸 수 없는 상황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다시 나를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기 위해 더 기민해야 할 뿐 아니라, 마음에도 무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명상 리추얼을 시작했을 때는 외부적으로 삶이 어느 정도 여유를 되찾았을 때다. 최초의 시도를 했을 때를 명상의 난이도로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끝판왕이었던 거다. 가장 현재를 살고 있지 못할 때, 불안하고 처절할 때, 명상의 명자도 모를 때니까. 지금은 그 때 보다 평화롭고 안정적이며, 조금은 더 성숙했고, 도움과 조언을 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인지, 쉽지는 않았지만 한 달 동안 조금 씩 더 편안해짐을, 익숙해짐을 느꼈다.  

 

오늘은 명상 리추얼의 마지막 날. 모든 것은 지나가니까, 상황은 또 바뀔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순간들이 있을지어다. 그 때를 대비해, 적금 들 듯 하루 하루 나를 돌본다. 주식이나 코인이 아니라서 대박은 안난다. 매일 해도 티가 안난다. 하지만, '별 생각 없이 그냥 하는 힘'의 마법을 이제는 나도 알게 되었으니까, 별 생각 없이 그냥 해 본다. 계속 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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