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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답 노트/책과 공부

독서노트/트레바리 : [문학] 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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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까이 두고 늘상 떠올리지는 않더라도 마음 깊은 곳에 슬픔으로 남아있는 친구가 있다. 오래도록,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제, 아주 우연히도, 정말이지 믿을 수 없는 우연으로 그녀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어쩌면, 이렇게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날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일 년에 두어 번 쯤, 해가 따사로운 날 친구를 떠올렸다. 그녀는 아주 먼 곳에 있고 돌아올 날도 알지 못한다. 다만, 우리가 헤어지고도 수 년이 흐른 어젯 밤, 내가 늘 있던 자리에서 그녀에 대해 알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실낱처럼 가늘게라도 여전히 이어져 있는 것 같다.

그게 바로 어제였다. 나는 오늘 내내, 세상에 마법 같은 일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어떤 사실을 이런 식으로 알게 된다면 개연성이라곤 없다고 혹평을 받을 것 같다. 감정을 쏟을 가치가 있다는 이유로 그녀를 기억했던 것은 아니다. 우리가 정말로 이어져 있었다면, 해가 따사로운 날 그녀의 안녕을 바란 내 마음이 아주 조금씩 가 닿았을지도 모른다. 이왕 마법이 일어난 김에, 사랑의 기적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끔찍한 기억과 결핍으로 성한 데가 없는 로자 아줌마와 모모는 정말이지 서글프다. 그러나, 우연히 꺼내어진 마음 저 편의 슬픔을 돌아보며 다시 생각해본다. 누군가를 사랑하며 사는 한, 누구에게도 무결한 생은 없을 것 같다. 어떤 식으로든 상처를 남기고, 누구나 이것을 껴안고 살아간다. 이것은 유태인 동굴처럼 도망칠 구석이 되기도 하고, 침대 밑에 숨긴 사진처럼 당장의 위안이 되기도 한다.
사랑한 것과는 이별해야만 하고, 슬픔으로만 영원을 보낼 수는 없다. 그 때 그 때 깊은 곳에 묻어놓고 가끔씩만 떠올리면서, 내 몫의 여생을 살아간다.

죽어버린 육신에 화장을 덧칠하고, 향수를 붓고, 그 옆에서 며칠이고 잠드는 모모가 단지 참혹하지만은 않았다. 할 수 있는 모든 사랑을 하는 순간이다. 우리에게는 항상 그러기 위한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충분히 사랑하고 충분히 슬퍼해야만, 이후에 가끔씩만 슬퍼할 수 있다. 다만 그 모든 일을 겪어내다 잠시 동굴 밖으로 나왔을 때, 롤라 아줌마가 건넨 말에 끝내는 조금 울었다.

"기다리는 동안 나랑 함께 살지 않을래?"

사랑은 떠나고, 그러고는 살 수 없을 것만 같은 길목에서도 누군가는 말을 걸어온다. 생은 누구에게도 완전한 채로 보존되지 않고, 때로는 너무 버거워서 벗어던지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각자의 앞에 놓인 생인가 한다.
그러다보면, 살다보면. 가느다란 실이 이끄는 곳에서 고대하던 것을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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