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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와 아무 말/다섯 밤과 낮

2021. 03. 1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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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오프를 내고 조금 오랜만의 출근을 앞두고 있다. 주말에는 서해 바다에 다녀왔다. 나는 동해를 끼고 있는 도시에서 자랐는데, 신기하게도 어른이 될 때까지 서해를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거의 서른이 다 되어서야, 시간이 넉넉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바다를 봐야만 할 것 같을 때에 종종 서해를 보러 갔다.

서해는 내게 역동하고 소리 내는 바다가 아니라, 잔잔하고 온전하며 무사한 감상을 준다.

 

그 날 오전은 미세 먼지가 가득했다. 물이 빠져 나간 회색 바닥과 탁한 하늘이 섞였다.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가 아니어도 구름 너머나 다른 세계에 선 것 처럼 그 나름이 좋았다. 오후께 소나기가 뿌리더니 깨끗이 개고, 거짓말처럼 돌아온 바닷물 위에 지는 해가 부서졌다. 일부러 비켜준 것 같이 어디에도 누구도 없었다.

 

카메라 없는 시대의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을 볼 때도 다시 볼 수 없어서 얼마나 아까웠을까, 하고 생각하며 나는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남자친구와 손을 잡고 도란 도란 이야기하면서 찬란하고 가만한 물결을 보았다. 사진 없이도 그 반짝임이 눈 안에 남을 때 까지 보았다. 카메라 없는 시대의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은 아주 오래도록 보았을 것 같다. 더 바랄 것 없이 모든 것이 충만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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