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21 (목) : 쿤타와 내 낡은 서랍 속의 아이팟
쇼미더머니를 조금 봤다. 저번 시즌을 아주 재밌게 봤기 때문에 관성적으로 봤다. 경쟁하는 프로그램이 다 거기서 거기 뻔하다지만, 막상 보기 시작하면 당연히 재밌다. 그러던 중 아주 흥미로운 참가자를 발견했다! 이 사람이 이번 시즌 3위 안에 든다에 오백원을 걸겠다.
쿤타! 가사가 독보적이고 분위기가 죽여준다. 듣자마자 내가 고딩 때 좋아하던 힙합의 기운을 느꼈다. 마침 음악을 오래 했다는 서사로 캐릭터를 풀길래, 무슨 노래를 했었는지 막 찾아봤다. 동전한닢 Remix에 나왔던 사람이었다. 나는 이 곡을 닳고 닳도록 들었다. 미술학원 갈 때, 올 때, 그림 그리면서, 독서실에서, 아이팟 나노 3세대로 들었다.
그 시절 나는 가리온, 피타입, 데드피, 버벌진트, 더블케이, 사이먼도미닉, 더콰이엇, 랍티미스트, 화나, 키비...를 들었다. 우왕. 쿤타 씨가 마흔이라는데 마치 길 가다 고딩 동창을 우연히 만난 기분이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노래를 들을 때 가사를 아주 주의깊게 듣고 아름다운 말에 흠뻑 빠지는 편인데, 그런 고딩 내게 그 시절 국힙은 (헉 이렇게 말하니 너무 옛날 사람 같다...) 그야말로 어른의 맛이 듬뿍 나는 철학과 은유로 가득했다. 사춘기란 원래 별다른 사고를 치지는 않아도 세상 versus 나의 외로운 싸움이기 때문에, 나 역시 고독하고 씁쓸하고 다소 아리송한 그 맛이 그렇게 좋았던 것 같다.
내가 어쩌다 힙합을 듣게 됐지? 생각해보니 고1 때 친한 친구들 중 힙합을 좋아하는 애들이 있었다. 웃기려고 한 거였긴 했지만 몇 번 가사를 써서 녹음해 들려주기도 했다. 어쩌면 걔네들이 래퍼가 될수도 있었을텐데. 그 때만 해도 고등학생이 랩을 한다는 건 꽤나 상상 밖의 일이었다. 여튼 그 친구들이 내게 저들을 알려주었고, 나는 그 때도 지금처럼 마음에 드는 노래는 한 곡 반복하며 학교를 다녔다.
키비의 고3후기를 들으며 고3을 보내고, 막상 어른이 되어서는 힙합을 별로 듣지 않았다. 서울로 대학가면 힙합 공연 같은 거 갈 줄 알았는데 대학생 때 빅뱅을 더 좋아했다. 요즘은 차트에 올라온 힙합을 듣는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건 바뀌니까, 고딩 때 힙합과 요즘의 힙합도 다르다. 라임북을 끽해야 만원에 팔려던 팔로알토는... 지금 엄청 부자 됐겠지. 대단한 유명인이 된 사람과 사라진 사람이 있다. 그들은 무얼하고 지냈으려나. 하던 것을 계속해야만 하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어디로 갔는지 묻지는 않는다.
플레이리스트에 그 시절 힙합을 찾아 넣었다. 멜론에 없는 것도 있다. 그 무렵 나의 BGM이었던 노래를 여기에도 적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