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4. 02 (금)
'베드 타임'이라는 이름의 차를 샀다. 요즘 카페인에 부쩍 취약해져 커피는 물론 차도 멀리하고 있는데, 디카페인이라 자기 전에도 마음 편히 마실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젯 밤 차를 끓이고 마시며 책을 읽었다.
어린이 독서 교실 선생님이 쓴 어린이에 대한 책이다. 읽는 내내 가슴이 따뜻한 물이 보글보글 솟는 것처럼 두근거렸다. 그리고 나의 어릴 적 글쓰기 선생님이 생각났다. 초등학교 다니던 내내 일주일에 두 번 씩, 방과 후 교실에서 독서와 글쓰기를 가르쳐 주었던 선생님. 담임 선생님처럼 기억하기 좋은 주제가 아니어서였을까, 이렇게 오래도록 한 번도 선생님을 떠올리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했다.
나는 책 읽기도 글쓰기도 아주 좋아하는 어린이였다. 또래보다는 잘 썼던 모양이고, 그래서 선생님이 높은 학년 수업을 듣게 해주셨다. 나는 꽤나 우쭐대기를 좋아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점에 있어서는 별로 그랬던 것 같지 않다. 다만 학급 문고에 있는 어린이 책들(그 당시 내 기준)보다, 글씨가 많고 두꺼운 책을 읽을 수 있는 게 좋았던 것 같다. 그 때 읽었던 책들과 썼던 글들로부터 정확히 무엇을 배우고 나아갔는지는 전혀 기억할 수 없다. 다만 오래도록 즐거웠고, 서른 살이 넘도록 살아 가면서 종종 필요했을 어떤 것들을 남겼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여전히 책도 글도 좋아한다. 눈을 뜨자마자 무엇이든 써내려 가는 힘이 그 때 내게 왔을 지도 모른다. 서른 한 살의 어느 날 문득 매일 글쓰기를 시작하고자 한 마음이 그로부터 왔을지도 모른다. 선생님을 이렇게 오랫동안 기억하지 못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
선생님의 이름이 퍼뜩 기억이 났다. 구글에는 무엇이든 있으니까 검색해본다. 2001년에, 우리 지역 모 글쓰기 대회에서 선생님이 일반부 대상을 받았다는 기사가 나왔다. 선생님 이름 옆 괄호에 들어있는 동 이름을 보니 선생님이 분명하다. 2001년에 나는 11살, 나를 가르치고 있을 때의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무엇을 하고 계실까. 내가 자라느라, 너무 많은 수업을 듣느라, 너무 많은 글을 쓰느라, 글쓰기 수업을 잊는 동안 선생님은 무엇을 하셨을까, 지금도 글을 쓰실까.
선생님 이름 옆 괄호에 동 이름이 들어있고, 그 옆에는 집 전화 번호가 쓰여있다. 개인 정보 보호라는 인식이라곤 없었을 2001년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아주 만약에 전화를 한다면 선생님이 받으실까, 에이, 20년 전이다. 전화 번호가 바뀌었을 수도 있다. 선생님이 나를 기억하실까. 나는 책을 끝까지 읽고, 차를 다 마시고, 불을 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