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3. 31 (수)
우리 집 맞은 편에 아주 큰 공사를 하고 있다. 나는 잘 때 소리에 크게 예민하지 않은 편이라 다행이지만, 눈을 뜨면 부산한 공사 소음이 잔잔하게, 그러나 끊임 없이 들려온다. 듣기로는 재개발 부지라는 것 같다. 땅도 아주 넓고, 공사도 아주 크다.
공사를 시작한지는 6개월이 넘었나보다. 건물들이 빼곡히 자리한 상가 골목이었다. 폭약을 몇 번 터뜨리니 금세 돌 무덤이 되었다. 조금은 무시무시한 울림이 내가 앉은 자리 까지 전해왔다. 그러더니 며칠 새 콘크리트 조각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기약 없는 흙바닥이 되었다. 붉은 땅에 보이지 않는 선이 그려져 있기라도 한 것 처럼, 족히 수 십 대는 되는 포크레인들이 구덩이를 파고, 무언가를 묻고, 시멘트를 붓고, 또 다른 구멍을 뚫는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미세먼지가 뿌옇게 시야를 가리는 날도, 어김 없이 작은 사람들과 큰 기계들이 부지런히 일을 한다.
하루 하루가 달라지는 땅을 본다. 어떤 사람들이 회사나 집이라고 이름 붙였던 이 땅에 오갔을까, 또 어떤 사람들이 그것들을 흙으로 만들었까, 그런 적은 몇 번이나 될까, 수 십 번? 수 백 번? 어떤 사람들이 다시 다른 것을 짓고 이름 붙일까, 그럼 또 어떤 사람들이 이 땅을 쓰고, 살고, 지나치게 될까. 그렇게 많은 이름과 모습과 쓸모가 거쳐감에도 불구하고 땅이 땅이 아닐 수는 없다는 것이, 땅은 어쨌거나 그냥 땅인 대로라는 것이 묘연하다.
나는 멀리서 지켜본다. 밑그림도 없이 그리는 것 같은 저 공정과 작업들은 얼마나 오랜 역사의 결과물이려나. 사람들과 기계들은 막연한 땅에서 마치 모두가 다음 할 일을 알고 있는 것처럼 바삐 움직인다.